| 설교자 | 오덕호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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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창 1:26-31 |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지 아십니까?
(창 1:26-31)
오늘도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들 가정에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서로 축복해주실까요? “성도님은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즈음 우리는 자존감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러나 사전에는 자존감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존감은 아직 학문적으로 정확히 정의된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존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서로 공감하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존감이 무슨 뜻입니까?
자존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존심과 비교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인터넷을 찾아보면 자존심과 자존감을 비교하는 글들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을 읽지 않더라도 우리는 대부분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번 여쭤볼까요?
여러분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과 자존감이 강한 사람 중에 누구와 함께 있고 싶으십니까?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지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불편하지요. 좀 극단적인 질문을 드려볼까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과 자존감이 강한 사람 중에 누가 쉽게 자살할 것 같습니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지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쉽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하면 낙심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좀처럼 자존감에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그 어려움을 이겨냅니다. 어떻습니까? 공감이 되시지요.
도대체 자존심과 자존감이 어떻게 다르길래 자존심이 강한 사람과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 이렇게 다를까요? 자존심은 사전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자존심은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남에게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자존심에는 비교의식이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 앞에서 자존심이 상하면 속이 상해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절대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양보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까이 지내기 불편한 것입니다.
자존감은 어떻습니까? 자존감도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자존심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자존감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존귀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별로 좌우되지 않습니다. 남들과의 비교의식도 별로 없습니다. 남에게 이겨야 한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오히려 남에게 져도 자기는 여전히 존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기려고 애를 쓰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져주거나 양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비방해도 별로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늘 마음이 평안하며 힘차게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강한 사람과 자존심이 강한 사람 중에 누가 세상에서 더 성공적으로 살 수 있을까요?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자녀를 자존감이 강한 사람으로 키우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자존감과 자존심의 공통점은 둘 다 자신을 존귀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장 큰 차이점은 남들과 비교의식이 있느냐 없느냐와 사람들의 평가에 민감하냐 민감하지 않느냐입니다. 자기를 존중해도 남들과 비교의식이 강하면 자존심이 되고 비교의식이 없으면 자존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가에 매달리면 자존심이 되고 사람들의 평가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 자존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존감이 강해지려면 두 가지를 극복해야 합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평가입니다. 먼저, 비교의식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은 나와 비교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개보다 빨리 달릴 수 있습니까? 없지요. 그러면 개보다 빨리 달리지 못해서 속상하십니까? 아니지요. 우리는 개보다 느려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개를 우리의 비교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개를 비교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요? 다른 분야에서는 우리가 개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개보다 지각이나 기술이 훨씬 더 좋지 않습니까? 그것만이 아닙니다. 존재 자체가 개보다 훨씬 더 존귀합니다. 우리는 개와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개 때문에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개 앞에서는 우리가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개에 대해서만 그런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교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도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한 사람의 평가를 잘 받으면 됩니다. GE의 사장을 지냈고 미국 최고의 경영자로 꼽혔던 잭 웰치는 어렸을 때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친구들의 놀림을 받고 주눅이 들었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네가 말을 더듬는 것은 네 생각이 말보다 더 빨리 움직여서 그런 거야. 너는 그만큼 머리가 좋은 거야.” 잭 웰치는 어머니로부터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은 후부터 친구들의 말에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강한 자존감을 가지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남과의 비교의식을 극복하고 사람들의 평가를 극복할 수 있다면 놀라운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것을 가르쳐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철저히 비교의식과 사람들의 평가를 극복하며 자존감을 가지고 살도록 도와줍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우리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27-28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세상에 이보다 더 존귀한 피조물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외에는 가장 존귀한 존재 아닙니까? 우리는 다른 피조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 같은 동물과 전혀 비교의식 없이 최고의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과도 비교의식이 없어야 자존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정말 다른 사람들도 우리의 비교대상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왜 아닙니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똑같이 존귀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날뛰어도 다른 사람보다 더 존귀해지지 않습니다. 너나 나나 모두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서로 돕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하는데 창세기 2장에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잘 아시지요. 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까? 사람을 남자 하나 만들어놓으니까 보기에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보기에 좋았습니다.
이 과정을 잘 보십시오. 처음에 사람을 하나 만드셨더니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 더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남자와 똑 같은 사람을 만드셨습니까? 아닙니다. 남자와 다른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면서 돕는 배필로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서로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것은 남녀사이에서만 그런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르고 서로 도우며 살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로 돕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아무리 잘나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남보다 부족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내가 아무리 못나도 남을 도와야 합니다. 남보다 나은 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비교하며 경쟁하지 말고 자기의 장점을 가지고 서로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똑같이 존귀하면서 장단점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비교의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게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하면서 이기적이 되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꾸 다른 사람에게 이기려고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교의식이 생긴 것입니다.
더욱이 사람들은 자기의 취향에 따라 남을 편애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을 편애합니다.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돈으로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돈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교회봉사는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봉사 잘하는 사람을 편애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봉사로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돈으로, 교회봉사로, 미모로, 교회직분으로 서로 비교의식을 가지고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으로 자존심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런 경쟁에서 이기면 교만해지고 지면 자존심이 상해서 낙심합니다. 심지어 질투하며 미워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타락한 후에 비교의식을 가지고 사람들의 평가에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원래 가지고 있던 자존감은 잃어버리고 자존심만 남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놀라운 자존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존심에 매달려 교만해지거나 상처를 입지 않고 오히려 자존감을 가지고 평안하고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창조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지만 나중에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모습에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첫 번째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세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특별히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지 아십니까?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합니다. 모든 피조물 중에 우리만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개보다 존귀하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천사보다도 존귀합니다.
사실 창조기사만 봐서는 이것을 분명히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후에 이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이렇게 되었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보다 훨씬 더 존귀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고귀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타락한 후에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아예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사보다 더 존귀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4입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우리 모두가 이렇게 존귀하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자녀들 중에 더 존귀한 자녀도 있고 덜 존귀한 자녀도 있습니까?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존귀하게 여기시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주눅이 들겠습니까? 우리는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존귀하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놀라운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고 우리의 찬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만족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절대로 하나님 없이 동물처럼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단, 여기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해서 인간 마음대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을 찾아가서 만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야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하나님과 맞먹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예배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하나님 뜻대로 살며 복을 누리게 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또한 말씀을 주셔서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입니까?
셋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온 세상을 다스리며 사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연의 힘에 굴복하며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연을 하나님 뜻에 맞게 잘 관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질병이나 자연재해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모든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모든 것을 극복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자연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뜨거운 소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두 번째 것은 우리 모두가 자기만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으로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창조기사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예수님의 구원을 통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로 이것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 따라 다른 달란트를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달란트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달란트가 달라도 서로 비교합니다. 워낙 남에게 이기려는 마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더 인기 있는 달란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달란트를 누가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주셨지요. 하나님이 주셨다면 하나님이 평가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누구에게 심판을 받습니까? 하나님에게 받지요. 이때 사람들의 의견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아시는데 사람들의 의견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평가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알면 사람들의 평가에 매달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달란트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후에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우리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똑 같은 은사를 주십니까? 아니지요.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시지요. 왜 그러십니까? 서로 도우라고 그러시는 거지요. 우리가 받은 은사로 서로 경쟁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어느 은사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없지요. 우리는 성령님의 은사를 받으면 오직 감사하며 그 은사로 서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의 은사도 철저히 자존심은 없애고 자존감을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라고 창조되었습니다. 이것도 앞에서 살펴본 거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후에는 이 모습이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서로 지체가 되어 한 몸을 이루게 되었지요. 고린도전서 12:27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우리 몸의 지체가 서로 경쟁할 수 있습니까?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몸이고 한 머리의 명령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오른손과 왼손이 가위바위보를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한 몸의 지체라는 것을 알면 우리는 절대 비교의식을 가질 수 없고 자존심으로 싸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비천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모두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한 몸의 지체는 모두 똑같은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입니다. 서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똑같이 존귀합니다. 그리고 나만의 귀한 모습이 있습니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며 존귀하게 대해주십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우리에게 가장 귀한 분이 하나님이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습니다. 남과 경쟁할 필요도 없습니다. 가장 고귀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존귀하게 여기시며 항상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세상에서 어떤 일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 자존감을 가지고 늘 마음의 평안과 당당함 속에 이웃을 도와주며 세상에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소명을 이루며 보람과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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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의 말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세상에 나가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존귀하게 여기며 사랑하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장점으로 서로 도우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자존감을 가지고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사람들의 평가에 귀 기울이지 말고 평안 속에 당당하게 하나님이 맡겨주신 소명을 이루며 이웃을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이웃에게 유익을 주며 기쁨이 충만한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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